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 (문단 편집) === 반박 === || [[파일:baseball_new10-20210214-202128-003.png|width=300]] || || [[중국]]이 한복 뿐 아니라 [[기모노]], [[델(의복)|델]], [[아오자이]] 등 주변국들의 문화를 왜곡한다는 것을 그린 [[폴란드볼]] 만평 [br]중국입장에서 [[가드 불능#s-6|가불기]]로써 '''예'''라고 대답하면 한복왜곡이 원천봉쇄되고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만주족은 중화민족이 아니냐'''라고 받아칠수 있다. 한복을 빼앗으려다가 [[하나의 중국]] 논리가 원천 봉쇄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8UberwnqWi8)]}}}|| [[중국]] 커뮤니티, 문화계의 논점은 한국 커뮤니티, 문화계 측에서 반박 받고는 한다. 해당 논점과 관점은 맞는 점도 있지만[* 중국의 영향을 받거나 유사점이 있으며 중국에도 한복과 유사한 복식이 있음.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전통의상으로 [[한복]]이 존재함. 복식 문화에 중국 문화가 상당한 영향을 끼침.] 이를 증거로 확장되는 논리면, 즉 그래서 '한복은 [[한푸]]다'라는 결론에서 오류가 있거나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 첫째로, '''영향을 받았으나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교류적이었다'''. 사실 비단 한복과 한푸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상호교류적인 영향을 주고받지 않은 문화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단, 한복과 한푸는 그 뿌리가 다르다. 한복은 [[스키타이]]를 위시한 서-북방계 기마민족의 상유하고(上襦下袴.웃옷과 바지)형 복식인 [[호복]]을 근간으로 하며, 한푸는 남방계 정주민족의 상의하상(上衣下裳.웃옷과 치마)형 복식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한복은 처음부터 바지가 있었으나, 한푸는 남녀 모두 치마를 입는 형태였다. 그럼에도 양국의 복식이 점차 닮아가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국 복식의 요소를 채용하는 등, 서로 크고작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일종의 [[수렴 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중원과 한반도는 서로 교류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상호 문화와 문물, 경제를 교류하며 발전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복식 또한 서로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단적으로 원명대의 한푸는 [[한푸]] 문서에도 나오지만 [[몽골복속기]] 유행한 [[고려양]]의 영향으로 고려시대 후기 ~ 조선 초기 [[한복]]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으며 [[속자치통감]] 등의 '''당대 중국 사료에서도 [[https://m.blog.naver.com/dndudwp99/222006281009|해당 시대 중국 복식이 고려양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명나라 한푸가 건너가서 한복이 된 것이 아니라 한복이 건너가서 한푸를 명나라 당시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물론 당대의 상업적, 문화적 강국인 중국의 문화와 의복이 한반도로 많이 수입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당나라의 복식은 한반도를 비롯한 당대 동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가 왕족과 귀족의 복식으로 채용할 정도였다. 그리고 명 황실이 하사하여 유지되어온 [[단령]], [[곤룡포]] 같은 복식도 있으며, 이러한 복식이 전통이 되어 조선 내에 자리잡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양 국가의 교류과정은 종주-속국 관계를 떠나 전세계적으로 그렇듯이 상호관계에 기반한다. 재밌는 점은 중국이 주변국에 관복으로 영향을 준 [[단령]] 역시 중국 원산지가 아니라 [[서역]]에서 비롯된 복식이 중국을 통해 퍼져나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한푸 역시 고대 시대에는 '''남자도 치마를 입는 형식이었다가 기원전 3세기에 [[호복]]의 영향으로 바지를 입게 됐는데''', [[자치통감]]에는 [[조무령왕]]이 주변의 격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랑캐의 바지를 들여오는 호복령을 강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중국에서는 한푸가 호복을 비롯한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는 흐름을 애써 부정하며 원래부터 바지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의 복식학자들은 남방계의 한푸와 북방계의 호복을 구분하고, 호복 계열의 한복은 한푸와 구분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 내에서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강해짐에 따라 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해당 논리는 영향을 과대해석하고 있다. [[한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여 해당 국가의 복식과 문화가 모두 한푸의 복식이 될 수는 없다. 고대 일본의 복식이 백제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입었을 정도로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은 일본서기, 부상략기 등 다수의 일본 기록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모노를 싸잡아 한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각 문화권과 국가에 자생하고 있던 전통 문화와 생활 양식을 간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명 풍 조선 전통 복식의 경우, 한반도에서 지속되어온 민간의 일상 [[한복]]과 혼재하였다는 점, [[갓]], [[망건]], 문양과 실질적인 시대적 사용같은 세부적인 사항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 간과된다.] 오히려 이러한 논리는 조선의 [[한복]]과 [[한푸]]는 별개이며, 서로의 복식에서 서로의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 즉 상호가 별도로 존재하는 각 국의 문화로서 교류하였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해야 옳다. 즉 해당 문화가 각 국가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해당 문화가 전래되었고, 궁극적으로 각 국가에 존재하던 자생적인 문화와 특색과 어우러지거나 재단,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의 사례만이 아닌데, 동아시아에 전파된 중국 복식과 문화는 대체로 토착화되어 자국 내에서 소비되었다. [[일본]]만 해도 [[단령]]을 받아들인 뒤 시간이 흐르며 토착화되어 [[소쿠타이]]가 되었다.] 중국 내의 비슷한 사례를 들자면 중국 철학 사상 중 하나인 [[성리학]]은 [[인도]]와 [[네팔]]이 본산인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니 중국 성리학 사상은 곧 인도/네팔의 불교사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둘째로, '''조선족의 전통의상이 중국 커뮤니티 측의 주장처럼 전체 [[한복]]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족의 전통의상인 한복과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은 같은 분류에 속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한복 문화의 갈래 중 하나로서 조선족 전통의상인 한복이 존재하며, 그 역은 성립될 수 없다. 허나 다양한 매체에서 등장하는 조선족의 전통의상 한복은 조선족의 의복문화를 반영하기보단 전체 한복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맹점을 보인다. 이는 조선족의 역사가 길게 잡아도 150년, 짧게는 100년이 안 될 만큼 짧고, 출신 지역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조선족의 한복은 한국과 중국과 공유하는 [[교집합]]일 뿐이며 전체집합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조선족의 정통의상인 한복을 근거로 중국의 전통의상에도 '''조선족의 [[한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할 순 있어도, 한민족의 [[한복]]을 중국의 의상 중 하나라고 확대해석하여 차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관점이다. 만약 중국에 한국 문화를 고수하는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존재한다 하여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의 하위 분류라는 논리를 인정한다면, [[한국]]에도 [[화교]]라는 집단이 존재하며 [[동남아]], 미국 등 여러 국가에도 많은 [[화교]] 후손들, [[중국계 미국인]]이 존재하므로 '''중국 문화 역시 한국 문화, 미국 문화의 하위 분류라고 볼 수도 있다'''는 [[자가당착|결론에 당착하게 된다]]. 또한 '조선족'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그 뿌리가 중국이 아닌 조선에서 갈라져나와 만주 지방에 자리잡은 한반도 사람의 후예다. 따라서 현재 조선족이 중국의 소수 민족에 속해있더라도, 그 뿌리는 결국엔 한반도니 조선족의 전통의상=중국의 전통의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 셋째로, '''중국의 전통 의상과 한복에 존재하는 유사점을 다룰 때에 역사적 재현 오류가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시대와 복식이 맞지 않는다든지, [[명나라]]의 복식을 재현한 몇 전통의상들, 그리고 그 재해석들에선 유사점을 넘어 재현 오류가 존재하는 부분이 발생하곤 한다. 자료의 조사와 실제 구현에서 명나라 혹은 중국의 것이 아닌 [[한국]]의 것에 가깝게 제작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갓]]. 전문가들은 꼭대기가 평평하며 원통형을 이룬 말총 소재 갓은 조선 후기 갓의 특징이며, 중국 송나라의 그림에 비슷한 쓰개가 등장하긴 하지만 중국에선 그런 형태의 갓을 자주 쓰진 않았다라고 설명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02254|#]]] 물론 한중은 오랜 세월 교류해왔으며 때문에 상호 문화에서 유사점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지적되어야 하며, 대외적,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문화매체에선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재현 오류를 [[한푸]]의 모습 중 하나라고 소개하는 것은 타국을 넘어 자국 문화적으로도 검토되어야할 부분이며, 이러한 검토와 수정은 외려 상호 국가의 문화적 역량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 한편 이 과정에서 문화적, 역사적 맥락으로서의 [[한복]]이 무시되기도 한다. [[한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닌 문화적, 역사적으로 [[한민족]]에게 의미를 갖는 [[전통의상]]이며, 중국 측의 주장에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결여된 채 중국의 영향력과 하위 분류만이 강조되곤 한다. * 번외로, 중국 측의 반발에는 한복, 한푸의 범주에 대한 오인, 오해도 엮이고 있다. 한국의 반발에 대해 [[중국]] [[조선족]]의 전통의상으로서의 [[한복]]을 부정한다고 받아들이거나, [[명나라]] 양식마저 한복이라며 침해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예를 들어 중극 유명 드라마 제작사 于正는 [[한푸]] 사진을 리포스트하며 한국인이 이를 한복이라 주장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해당 [[https://img.theqoo.net/img/AfkRN.png|사진]]은 실제 지적되었던 중국 드라마의 갓, 망건의 형태와는 동떨어진 [[한푸]]라는 맹점이 있다.] 이러한 오인, 오해는 실제 재현 오류에 대한 지적과 혼동되며 논란을 악화하고 있다. 중국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당나라 양식은 당시 주변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왕족과 귀족의 복식으로 유행할 정도로 당대 트렌드였고, 점차 각국의 복식에 흡수되었다. 몽골은 한화될 뻔 했으나 북원으로 쫓겨나서 몽골인의 전통의복을 유지하고 있고, [[아오자이]]는 [[치파오]]의 영향을 받은 의복으로, 그전에는 한푸와 유사했다. [[https://www.deviantart.com/lilsuika/art/Evolution-of-Vietnamese-Clothing-and-Ao-Dai-287945386|#]]]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향을 끼쳤다"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며, 기원을 따지고 보자면 서·북방 유목민족의 [[호복]]이 전국시대 한푸에 준 영향[* 기원전 3세기에 호복의 '''[[바지]]'''가 한푸에 도입됐으니 말 다했다. 이전까지 중국에서는 남성도 치마를 입었다.], [[고려양]]이 [[원나라]]를 통해 한푸에 준 영향, 그 외 중앙아시아나 인도 등 [[서역]] 문화가 중국 문화에 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문화 간의 영향을 근거로서 타국의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해당 국가에 불쾌함을 초래하는 주장일 뿐이다. 이는 다른 문화권도 마찬가지이다. 유럽 전통의상의 경우, 서로마 멸망 후에는 고트족의 복식을, 그러다가 남유럽과 프랑스를 거쳐서 한때는 [[튀르크리|터키풍과 페르시아풍]] 복식까지 유행했다가 지금은 잉글랜드에서 유래된 [[정장]]을 입고 있는데 이러한 과거 복식들을 자신들만의 고유의 문화이자 복식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러한 논리라면 중국 문화도 한국의 영향을 받았으니 [[역지사지|중국 문화는 한국 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볼 때 중국 측의 문화적인 오해와 오인은 한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보단 점점 거세지고 있는 문화적 [[반중]], [[혐중]]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상호 논리를 검증하고 보완하기 보다는 각국의 감정 악화로만 이루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